2022년 12월 31일, 서쪽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2024년 2월 3일,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400일 간의 세계일주였습니다. 서쪽으로 향한 여행은 지구 한 바퀴를 돌아 다시 한국에 왔습니다. 오키나와 여행 이후, 저는 가족들과 함께 북규슈를 며칠 간 둘러본 뒤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400일 만에 도착한 땅이라고 말하기에는 모든 것이 너무나 익숙했습니다. 달라진 것도, 어색한 것도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늘…
[일본] 21. 열도의 끝
가고시마 시내에서 공항까지는 버스로 40분 정도 시간이 걸렸습니다. 오랜만에 오는 공항입니다. 저는 비행기를 타고 더 서남쪽, 오키나와로 향합니다. 한 시간이 넘는 비행 끝에 오키나와현 나하시에 도착했습니다. 겨울이지만 나하의 기온은 20도가 넘습니다. 해도 여전히 따갑습니다. 시내의 상황도 일본 본토와는 달랐습니다. 무엇보다 부실한 대중교통망이 눈에 띄었습니다. 철도 대국 일본이지만, 인구 120만의 오키니와섬에는 17km 길이의 모노레일 외에는 철도가…
[일본] 20. 유신의 시작과 끝
나가사키현 시마바라에서 배를 탔습니다. 한 시간여의 항해 끝에 구마모토에 도착합니다. 여기서 더 아래로 가면 규슈의 남쪽 끝, 가고시마입니다. 삿포로에서 시작한 여행은 두 달 가까이 남쪽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가고시마에 도착했습니다. 가고시마는 그만큼 먼 땅이었습니다. 도쿄와 가고시마는 신칸센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최대 시속 260km의 신칸센을 타고도 6시간 반을 달려야 도쿄에서 가고시마에 닿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가고시마의…
[일본] 19. 서쪽의 섬
일본 열도는 동북쪽에서 서남쪽으로 펼쳐져 있습니다. 동남쪽으로는 태평양에 접해 있고, 서북쪽에는 동해가 펼쳐져 있습니다. 일본의 동북쪽으로 가면 홋카이도를 넘어 사할린과 시베리아 동토입니다. 태평양으로도, 시베리아로도 오랜 기간 외부 세력은 넘어오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섬나라라는 점에서 흔히 영국과 비교됩니다. 하지만 영국과 유럽 대륙을 잇는 도버 해협은 40km 정도에 불과합니다. 반면 대한해협은 200km에 달하죠. 덕분에 일본은 오랜 기간 외부…
[일본] 18. 에키벤을 먹으며 든 생각
드디어 규슈로 넘어왔습니다. 홋카이도에서 시작해 혼슈를 횡단했고, 그 사이 시코쿠에도 잠시 들렸습니다. 이제 규슈에 왔으니, 일본의 네 개 섬을 모두 방문하게 됐습니다. 긴 일본 일주를 하면서, 저는 주로 철도를 이용했습니다. 페리나 버스를 이용한 적도 있었지만, 철도만큼 편의성이 좋지는 못했습니다. 일본의 교통망은 대부분 철도 위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도시 간의 간선 교통은 물론, 시내 교통도 그렇습니다. 작은…
[일본] 17. 유신의 고향
기차는 더 서쪽으로 달립니다. 혼슈의 끝, 규슈로 넘어가는 간몬 해협의 턱밑까지 닿았습니다. 이곳은 시모노세키(下関)입니다. 시모노세키는 야마구치현 서부의 작은 도시입니다. 인구가 25만에 못 미치죠. 역 앞에서 버스를 타고 조금 더 들어가니, 편의점도 찾기 어려운 조용한 마을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시모노세키가 일본의, 나아가 동아시아 전체의 역사에서 갖는 의미는 작지 않습니다. 이 지역의 옛 이름이 조슈(長州) 번입니다. 메이지 유신에서…
[일본] 16. 전쟁과 평화가 여기에
오카야마에서 바다를 따라 산요 본선의 열차에 탑승했습니다. 빠른 신칸센 대신 천천히 가는 보통열차를 선택한 덕에, 히로시마까지는 세 시간 넘게 소요됐습니다. 히로시마는 예상보다 큰 도시였습니다. 히로시마시의 인구가 100만을 넘어, 일본의 10대 대도시로 꼽히죠. 오타가와(太田川)라는 강 하구의 넓은 평야를 낀 도시입니다. 히로시마가 큰 도시가 된 것도 이 평야 덕분입니다. 강 하구에 아직 토사가 충분히 퇴적되지 않았던 중세까지는…
[일본] 15. 이 섬의 속도
일본은 1만 4천 개 이상의 섬으로 구성된 섬나라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특별히 다섯 개의 섬을 ‘본토’라 부르죠. 홋카이도, 혼슈, 시코쿠, 규슈, 그리고 오키나와입니다. 이 가운데 지리적, 역사적 배경이 다른 오키나와를 제외하고 네 개의 섬을 일본 열도의 4대 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면적이 가장 적은 섬은 시코쿠입니다. 간사에서 기차를 타고 오카야마로 향했습니다. 오카야마에서 다시 기차를…
[일본] 14. 천년의 도읍
학교에 다닐 때의 기억입니다. 수업을 하다 교수님은 “한국의 수도는 서울인가?” 물었습니다. 학생들이 그렇다고 대답하니, 교수님은 다시 물었습니다. “무슨 근거로?” 이 질문에 다른 학생이 조금의 농담을 더해 답한 것이 기억납니다. “이름이 서울이니까?” 서울이라는 말 자체가 수도를 뜻하는 우리말에서 온 것이니,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렇다면 말 그대로 수도를 뜻하는 ‘교토(京都)’를 일본의 수도라고 할 수도 있을까요?…
[일본] 13. 관문을 넘어 서쪽으로
나고야에서 도카이도 본선의 열차를 탔습니다. 열차는 세키가하라(関ヶ原)역에 도착합니다. 짧은 정차 끝에 열차는 다시 서쪽으로 달립니다. 이제 세키가하라를 넘었습니다. 세키가하라의 서쪽, 간사이(関西) 지방에 도착한 것입니다. 간사이는 일본 제2의 도시권입니다. 오사카와 교토, 고베를 비롯한 거대한 도시들이 모인 곳이죠. 인구가 도합 2,200만에 달하는 지방입니다. 일본 경제산업성 통계를 보면, 2019년 기준 간사이 지역의 GDP는 약 85조 엔입니다. 같은 해…